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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옛길 탐방, 춘향의 눈물과 오수개 충절을 걷다

 남원 오리정에서 시작해 임실 오수천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 주변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서린 옛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길은 과거 한양으로 향하던 주요 통로로, 소설 춘향전 속 이몽룡과 춘향이 이별의 눈물을 쏟았던 ‘오리정’이 그 출발점이다. 고을 경계에서 손님을 배웅하던 오리정 인근에는 춘향의 슬픔이 서린 ‘눈물방죽’과, 떠나는 임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 버선발로 뛰어갔다는 ‘버선밭’ 지명이 전해진다. 비록 도로 확장과 직선화 공사로 인해 옛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길가에 홀로 선 표지석들은 이곳이 단순한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역사적 서사의 공간임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오리정을 지나 북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노거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대말방죽에 닿는다. 이곳은 조선시대 ‘반보기’ 풍습이 행해지던 애틋한 만남의 장소였다. 추석 직후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가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던 이 숲은, 모녀들의 눈물과 웃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소통의 광장이었다. 현재는 방죽 수면을 마름이 뒤덮고 멸종위기종인 가시연이 힘겹게 싹을 틔우는 한적한 저수지로 변모했으나, 여전히 그 제방과 숲에는 수백 년 전 여인들이 나누었던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다.

 

길은 다시 오수천변의 망북정으로 이어진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망북정은 18세기 관리들이 북녘 한양의 임금을 향해 절을 올리며 충절을 다짐하던 곳이다.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망북정’ 암각서는 당시 지식인들이 공유했던 충의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수천 건너편은 우리에게 친숙한 ‘오수개 설화’의 실제 발생지로 추정되는 상리 천변이다. 흔히 원동산의 동상으로만 기억되는 오수개의 이야기는 사실 이 차가운 물줄기 옆에서 주인을 구하고 숨진 충직한 짐승의 실화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오수역참은 고을 관아와 맞먹는 규모를 자랑하던 국가 교통의 핵심 요충지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천 년의 세월 동안 통신과 운송을 담당했던 이곳에는 이제 한 그루의 은행나무 노거수만이 남아 역사의 부침을 지켜보고 있다. 500년 전 한 선비가 읊었던 시구에는 역 앞에 실재했던 ‘개 묻은 나무(獒樹)’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남아 있어, 설화 속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지역민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힌 역사적 사실임을 뒷받침한다. 임금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시름과 개의 충절이 한 공간에서 공명하고 있었던 셈이다.

 


탐방의 종착지인 원동산에는 오수개의 넋을 기리는 의견비각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철교 공사 중 발굴된 의견비는 우여곡절 끝에 이곳으로 옮겨져 3.1 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장터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조형물 주위에 새겨진 부조 속 오수개는 불길 속에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긴박한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충의라는 거창한 명분을 넘어, 끝까지 곁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다정함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용히 되묻는다.

 

춘향의 이별로 시작해 오수개의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이 옛길은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들이 오수천을 사이에 두고 겹쳐지는 거대한 박물관과 같다. 직선화된 국도 옆으로 잊혀가는 지명들과 잡초 무성한 옛터들은 우리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오갔던 이 길은 지금도 설화와 풍경, 그리고 오래된 기억을 품은 채 묵묵히 흐르고 있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걷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잊혔던 가치들이 다시 살아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