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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의 귀환, 이자람·차지연이 빚은 한의 정수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창작 뮤지컬 ‘서편제’가 여섯 번째 시즌을 맞아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작품은 최고의 소리꾼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자식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유봉과, 그 과정에서 겪는 송화와 동호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다. 길 위에서 시작된 이들의 유랑은 예술을 향한 집착과 가족 간의 갈등이 뒤엉키며 처절한 서사로 전개된다. 특히 소리의 완성을 위해 딸의 시력을 앗아가는 유봉의 광기 어린 집념은 예술의 본질과 예인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무게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공연은 초연부터 작품의 기둥 역할을 해온 이자람을 비롯해 차지연, 이봄소리, 시은이 송화 역을 맡아 각기 다른 색깔의 ‘한’을 선보인다. 송화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광기를 묵묵히 견뎌내며 자신의 슬픔을 소리로 승화시키는 인물로, 극의 중심에서 절절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특히 극 후반부 시력을 잃은 송화가 켜켜이 쌓인 한을 토해내듯 부르는 ‘심청가’는 관객들의 숨소리조차 잦아들게 만드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연기는 한국적 정서인 한의 정수를 무대 위에 완벽히 구현해낸다.

 


음악적 구성은 이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다. 작곡가 윤일상은 판소리라는 전통적인 소재에 발라드, 록, 팝 등 현대적인 선율을 매끄럽게 결합하여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완성했다. 국악감독을 겸임하는 이자람의 전문성과 현대 음악의 세련미가 어우러져, 관객들은 이질감 없이 한국적인 소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음악적 시도는 전통 예술이 박제된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예술로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동호 역에는 국악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김준수가 합류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소리를 거부하고 떠났지만 결국 자신의 뿌리로 돌아와 화해를 시도하는 동호의 복잡한 심경을 맞춤옷을 입은 듯 연기한다. 김경수와 유현석 또한 동호 역으로 분해 송화와의 애틋한 남매애를 그려낸다. 유봉 역의 서범석, 박호산, 김태한은 예술을 향한 집착으로 파멸해가는 예인의 고독과 집요함을 강렬한 에너지로 표현하며 극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무대 디자인 역시 작품의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한지를 겹겹이 배치해 산과 길을 형상화한 무대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단아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밝고 정갈한 풍경 위에 대비되는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조광화 작가의 유려한 대사와 윤일상의 선율, 그리고 한국적 미학이 담긴 무대 장치는 창작 뮤지컬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가시지 않는 여운에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이 작품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 문화의 깊이를 알릴 수 있는 훌륭한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소리를 향한 험난한 여정과 그 끝에서 피어나는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뮤지컬 ‘서편제’는 오는 7월 19일까지 공연을 이어가며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먹먹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